<니드 포 스피드> 감상 - 꿈은 이루어진다 (스포일러 있음) 영화/배우


*** 영화 스포일러 있음. 스포 없는 단순 감상은 http://chuinggum.egloos.com/4095829 ***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아무리 주변인들에게 <니드 포 스피드>가 너무 좋으니 꼭 보라고 말해도 다들 도미닉 쿠퍼 때문에 그러는 거 다 안다고 날 색안경 낀 눈으로 바라본다. 물론! 도미닉 쿠퍼가! 좋긴! 하지만! 도미닉이 나온 영화라고 무조건 추천하는 건 아닌데! 내가 <퍼펙트> 같은 영화 추천하는 거 봤냔 말이지!(콜린 파렐 주연 영화인데 정말 재미없다)

아무튼 그리하여 나는 읽어줄 이 없는 감상문을 이 블로그에 훌훌 털고 이따 3차 관람을 마지막으로 <니드 포 스피드>를 보내주려고 한다.

사실 나도 알고 있다. 주연배우가 레이싱 영화 주연으로 적합한 얼굴이 아니라는 걸. 미안하지만 이런 영화에는 좀더 쿨한 비주얼의 배우가 필요하다. 애런 폴은 레이싱 영화 주연을 맡기엔 너무 귀엽게 생겼다. 오히려 내가 매일 너무 귀엽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도미닉이 더 쿨하게 생겼음. 그런 이유 때문에 포스터를 보고 그냥 지나치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나도 도미닉이 아니었으면 그랬겠지...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았고, 그 결과 올해 보았던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기억속에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를 선택할 때 그 누구의 추천도 혹평도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음.

슈퍼카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면 환장할 만큼 까리한 차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지만 나는 그런 쪽에는 문외한이라서(심지어 니드 포 스피드라는 게임이 있다는 걸 안 지도 1년이 안 됐다) 영화 이야기만 해보려고 한다. 감상문이니만큼 철저히 주관적인 시점에서 작성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러두는 바임.


토비(애런 폴)는 정비공 일을 하는 아마추어 카레이서, 그의 동료 피트(해리슨 길버트슨)는 꿈을 꾸는 친구다. 피트는 토비에게 꿈의 내용을 이야기해주면서 넌 최고의 드라이버라며 용기를 북돋아준다. 무리의 다른 동료들은 쟤 또 저런다며 웃고 넘기고, 토비는 피트를 토닥여주며 고맙다고 말하지만 딱히 귀담아듣는 태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트는 항상 순수하고도 올곧은 눈으로 토비를 바라보고 격려하며 뒤에서 힘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토비가 라이벌인 디노(도미닉 쿠퍼)가 의뢰한 슈퍼카를 맡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토비를 쉴드쳐준 것도 피트고 그들의 마음을 돌린 것도 피트다. 디노와 레이스를 펼치게 되었을 때 토비가 타게 된 슈퍼카를 보고 이게 바로 그 차라고, 네가 이걸 타고 레이스에서 우승했다고 토비에게 이야기해준 것도 피트고, 결국 토비와 디노의 레이스에 끼어들어 참가했다가 토비를 대신해 죽은 것도 피트다. 만약 토비와 디노 둘만이 승부를 벌였다면 디노는 토비의 차를 박았을 것이고 토비가 위험에 빠지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잠깐 디노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녀석은 천재가 아니다. 너무나 유명해 클리셰가 되어버린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 대입해보면 디노는 오히려 살리에리 쪽에 가까운 캐릭터다. 디노와 토비의 대결구도는 모든 환경이 받쳐주는 수재 vs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 천재의 구도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미 프로 세계에서 뛰고 있는 레이서인 디노가 동네 아마추어 레이서 토비를 의식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거다. 디노는 언제나 토비에게 위협을 느끼고 있다. 최소 10년 이상을 알고 지냈던 사이인 만큼 토비가 얼마나 재능있는 레이서인지도 알고 있을테니까.

본론으로 돌아가서, 토비는 디노의 조작으로 피트의 죽음에 대한 누명을 쓰고 2년간 징역을 살고 가석방되자마자 데 리온 레이스에 참가하기 위해 차를 빌려 출발한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48시간은 너무나 험난했고 설상가상으로 위기감을 느낀 디노에 의해 600만달러 가치의 슈퍼카가 현상금으로 목에 걸리는 바람에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은 했지만 마지막 급습으로 슈퍼카는 고철덩어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레이스에 몰고 갈 차가 없다는 것이다... 그 때 피트의 누나이자 디노의 여친이면서 토비의 썸녀였던 아니타가 구원투수처럼 등장해 디노가 피트와의 사고 이후 처분하지 않고 보관해둔 바로 그 슈퍼카를 빼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도대체 뭐 하는 애인지 알 수가 없었던 이 여자는 여기서 우리에게 남친여친이라도 백프로 믿으면 안된다는 교훈을 주는 캐릭터였던 것이었다.) 결국 토비는 피트의 이름을 새긴 두 팔로 피트와 마지막으로 함께 달렸던 차를 타고 피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힐 레이스의 출발선에 서게 된다.

사실 위에서 장황하게 이야기한 것과 달리 피트는 빠른 퇴갤로 관객들의 뇌리에서 빠르게 잊혀진다. 그럼에도 내가 피트 이야기만 주구장창 해대는 것은 내가 감동받은 장면은 피트의 죽음이 없었다면 감동이 반감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운틴 키스코에서 있었던 첫 레이스 직전에 피트가 토비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흰 등대를 배경으로 빨간 코닉세그를 타고 레이스에서 우승한 토비의 모습을 꿈에서 보았노라고 말하던 피트. 토비가 코닉세그를 타고 출전한 데 리온 레이스의 결승점은 캘리포니아의 등대 앞이다. 경찰의 추격 앞에 낙오된 다른 참가자들과 제 꾀에 당해 자멸한 디노를 뒤로 하고, 토비는 끝내 등대 앞에 서고 만다.

가석방 조건을 어기고 레이스에 참가했기 때문에 경찰에 체포되며 토비가 묵묵히 흘린 단 한 줄기의 눈물은 그를 대신해 관객인 나로 하여금 폭풍같은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그 장면은 정말로 토비가 눈물을 쏟으며 오열해야 할 장면이었다. 흙바닥에 엎드러져 등대를 올려다보는 토비.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우리는 모두 예상할 수 있지만 입 밖으로 쉽게 꺼낼 수는 없다. 그 씬에서는 심지어 BGM과 카메라 연출마저도 완벽하다. 로우 앵글로 올려져 더욱 굳건히 선 흰 등대, 슈퍼카, 그리고 토비. 피트는 죽었지만 그의 꿈은 이루어진 것이다. "등장인물이 울 이유가 있는데도 울지 않으면 관객이 대신 눈물을 흘린다" 라는 말을 직접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 하나를 말하기 위해 구구절절 이 얘기 저 얘기 쏟으며 달려왔지만... 아무래도 이 장면은 말로 다 할 게 아니다. 영화를 안 보고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꼭 본편을 보기 바람. 킬링타임용이라고 생각했던 영화에서 이렇게 맘에 차는 명장면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아쉬운 장면이나 납득 안 가는 설정을 꼽으려면 한도 끝도 없지만, 적어도 나에겐 좋은 기억으로 남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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